[보이스피싱의 모든 것 ①] 어눌한 조선족 말투? NO!
[오마이뉴스 글:배지현, 글:소중한, 디자인:고정미]
개그 소재로도 종종 쓰이는 보이스피싱, 하지만 현실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오마이뉴스>는 총 일곱차례에 걸쳐 보이스피싱의 과거와 현재를 조망하고, 범죄조직의 실체를 분석하는 한편, 현장에서 보이스피싱과 대면하는 이들의 목소리에서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아봤다. 이 기사는 그 첫번째다. <편집자말>
독자 여러분, 스크롤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아래 동영상부터 시청해주세요. 보이스피싱 범죄가 벌어지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 보이스피싱, 이렇게 당한다 이 통화 녹음은 실제 사례입니다. 갈수록 진화하고 있는 보이스피싱, 당하지 않으려면 꼭 들어보세요. 주의하지 않으면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통화 녹음 제공 : 금융감독원, 편집 : 박소영) ⓒ
방금 보신 동영상은 비교적 최근 일어난 보이스피싱 범죄를 녹음한 파일입니다. 피해자는 계속 의심하고 거부하지만 집요하게 설득합니다. 피해자의 과도한 대출 상태를 파악하고 실제로 있지도 않은 '죄목'을 거론하며 겁을 줍니다. 또 반대로 '아내와 생년월일이 같아 돕고 싶다'며 피해자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서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피해자를 설득합니다.
보이스피싱은 영어로 목소리를 의미하는 'Voice'와 개인정보를 낚는다는 합성어인 'Phishing(Private Data+Fishing)'이 합쳐진 말로, 불법으로 빼낸 개인정보를 갖고 통신장비를 이용해 저지르는 범죄를 의미합니다.
보이스피싱을 수사해온 한 검사는 "전기통신수단으로 피해자의 절박한 심정을 이용해 조직적인 거짓말로 돈을 가로채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피해자의 절박한 심정'이 정의에 들어간 이유는 제1금융권을 이용하지 못해 제2·3금융권에 손을 내민 서민들이나 취업에 힘들어 하는 청년들, 자식이 주는 용돈을 한 푼 두 푼 모은 노인층이 주 타깃이 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요즘 같은 세상에 누가 보이스피싱을 당하나'라고 안심하고 있으신가요? 아니면 전화사기는 뉴스와 비교적 거리가 먼 노인층만 당하는 범죄라고 알고 계셨나요?
ⓒ 고정미
지난 2014년 경찰이 접수한 보이스피싱 범죄 발생 건수는 2만2205건, 피해액수는 1887억 원이었습니다. 그 뒤로 2016년까지 다소 하락세를 보이던 보이스피싱 범죄는 지난 2017년에 다시 2만4259건(피해액 2470억 원)으로 급등했습니다. 올해는 9월까지만 2만4876건(2825억원)이 집계돼 역대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피해자들은 왜 속수무책으로 속았던 걸까요. 25년 차 검찰 수사관 김영헌씨는 저서 <속임수의 심리학>에서 "속임수에 걸려드는 데는 나이도, 학력도, 직업도 없다"고 말합니다. 또 "속임수는 신뢰와 불안, 욕구에 기인해 발현된다"고 설명합니다.
<오마이뉴스>는 보이스피싱조직이 피해자들의 신뢰, 불안, 욕구를 어떻게 이용해 그들을 감쪽같이 속였는지 분석해봤습니다.
[신뢰] 금융기관, 지인이라는데... 믿었고, 속았다
피해자 A씨는 충격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를 속인 보이스피싱 조직은 필리핀에 거점을 두고, 국내 금융기관을 사칭했습니다. 이 조직은 대출에 필요한 보증보험증서 발급비용을 내야 한다며 2015년 6월부터 2016년 6월까지 피해자 60명에게 총 5억 4000만 원을 뜯어냈습니다. 한 피해자는 6개월 동안 2억 8천만 원을 입금했습니다.
또 다른 조직은 수사기관인 척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기도 했습니다. 지난 10월, 보이스피싱 '콜센터'의 조직원은 "당신 명의로 된 계좌가 사기 조직의 범죄에 사용됐다, 얼른 인출해 금융감독원 직원에게 전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돈을 받으러 온 '자금책'은 금융감독원 사원증과 금융감독위원회 위원장 명의 문서를 보여주며 믿게끔 했고, 피해자 3명은 총 1억 원을 건넸습니다. 결국 이 중 한 명은 자살 충동에 시달리며 수면장애를 겪는 등 극심한 피해를 겪었습니다.
누군가는 가족이 SNS를 보내는 방식으로 피해자를 속였습니다. 아직 잡히지 않은 이 범죄자는 지난 11월 B씨에게 조카 박아무개씨를 사칭하며 "계좌 인증서 오류가 났으니 대신 입금해달라, 월요일에 다시 돈을 입금해주겠다"라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프로필 사진도 박씨와 같았습니다. B씨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98만 원, 96만 원을 보냈습니다.
[불안] "지금 안 보내면..." 협박에 또 협박
보이스피싱 초창기부터 있어온 '납치빙자' 유형은 여전히 노인층을 겨냥하고 있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은 일차적으로 가족 개인정보를 알아내 빈틈을 공략합니다. 지난 11월 70대인 C씨는 "아들이 7천만 원짜리 보증을 섰는데 지금 아들을 데리고 있다, 우선 4천만 원을 보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이겠다"라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C씨는 모아온 돈 7백만 원을 급히 보냈습니다. 현재 '자금책'인 말레이시아인 남성만 잡힌 상태입니다.
보이스피싱 사범들은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낀 피해자가 대출을 취소하려고 하면 과감히 협박하기도 합니다. D씨는 대출액의 20~30%를 부담하라는 금융기관 사칭 사기에 "20%도 낼 여유가 없다"며 전화를 끊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기범은 어차피 환급 처리가 된다며 자신의 부인과 생년월일이 같아서 계속 설득하는 거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도 D씨가 대출금의 20%인 150만 원마저 사기당하면 당장 생활이 어려워진다고 불안해하자, 사기범은 이미 금융감독원에 대출 정보가 들어가 나중에 대출을 받으려고 해도 힘들어진다고 협박했습니다.
[욕구] '마지막 기회' '몸캠' 기상천외한 수법들
올해 정부가 초강력 대출 규제에 들어가자, 보이스피싱 조직은 마지막 기회라며 마수를 뻗쳤습니다.
아직 잡히지 않은 한 보이스피싱 조직은 현대캐피탈 대출 상담사 '정인호 대리'를 사칭해 "기존 대출을 일시적으로 갚으면 신용등급이 높아져 낮은 이자의 대출이 가능하다"라고 피해자 E씨를 속였습니다. E씨는 그들에게 약 1700만 원을 보냈습니다. 태국 방콕에 있던 다른 조직은 저금리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해줄 테니 보증보험증서 발급 비용을 보내라고 피해자 11명을 속여 1억 5330만 원을 편취했습니다.
서로 몸을 보여주자며 '몸캠'을 유도한 뒤 돌변하기도 합니다. F씨는 지난 10월 카카오톡을 통해 알게 된 범죄자로부터 "알몸으로 영상통화를 하자"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보이스피싱 범죄자는 F씨의 나체 영상을 녹화한 뒤 "합의금 50만 원을 입금하지 않으면 가족들에게 해당 영상을 유포하겠다"라고 협박했습니다.
▲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금융감독원 직원을 사칭한 남성에게 돈을 전달하는 모습. 경찰은 이를 미리 인지해 현장에서 남성을 검거했다.
ⓒ 경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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